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정부의 부실한 메르스 대응을 풍자한 예능 프로그램을 잇달아 징계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문제가 그러잖아도 심각했다. 권력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유인물을 돌린 시민이 체포되거나 화백의 전시회 참여가 가로막히는 등의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이제는 가볍게 웃고 즐길 예능 프로그램마저 자유로이 만들 수 없게 된다는 건지, 정말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6월13일 <문화방송> ‘무한도전’에서 진행자 유재석은 “메르스 예방법으로는 낙타, 염소, 박쥐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하고 낙타고기나 생낙타유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질병관리본부가 제시한 대책 가운데 한 구절을 읊었다. 이에 방심위는 유재석이 ‘중동 지역’ 낙타임을 고지하지 않았다며 정보 제공이 부정확함을 징계 사유로 들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박명수가 “낙타를 어디서 봐?”라고 곧바로 맞받았다. 낙타를 조심하고 싶어도 우리 주변에 낙타가 없다는 말로, 삼척동자도 정부의 예방대책이 비현실적임을 풍자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수준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심의하면서 ‘중요 정보를 누락시켰다’고 뉴스 기사를 심의하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한국방송>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에 대한 징계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의 허술한 메르스 대책을 풍자한 것을 두고 방심위는 “시청자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소지가 있으며” “특정인의 인격권 등을 침해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라고 징계 사유를 들었다. 청와대나 유관 정부기관의 소수를 제외하고, 도대체 민상토론을 보고 불쾌감을 느낄 시청자가 누가 있을까. 청와대 등의 불쾌감을 시청자의 불만으로 둔갑시킨 건 해도 너무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문’ 자도 안 나왔다. 특정되지도 않은 특정인을 두고, 인격권 침해를 들먹이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다.
방심위의 이런 조처로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재가 제약된다면, 권위주의 정권 때처럼 질 낮은 몸 개그나 단순한 말장난이 판을 치게 될 게 뻔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방심위의 제재가 국민이 가볍게 웃고 즐길 작은 행복을 박탈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풍자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을 보면서, “나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이 더 좋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결코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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