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산업화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일궈졌다. 비유적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피였다.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는 건 다반사였고 기계에 몸이 빨려들어가거나 추락하는 철판에 깔리는 등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사고가 빈발했다. 그러나 독재 권력의 여론 통제와 노조 탄압으로 참상은 제대로 드러나지도 못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15위의 경제 대국이 됐고 정치적 민주화도 진행됐다. 그런데도 노동 현장의 위험은 세계 최고 수준이니 비정상이 아닐 수 없다.
3일 한화케미칼 울산2공장에서 하청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 사고는 이런 비정상 위험국가에 대한 또 하나의 심각한 경고음이다. 민주노총 집계를 보면 2000년 이후 3만3900여명이 산업재해로 숨졌다. 한해 평균 2000명이 넘는다. 올해 들어서만도 1월 경기도 파주 엘지디스플레이 질소 누출사고, 4월 경기도 이천 에스케이하이닉스 질소 누출사고, 같은 달 현대제철 인천공장 쇳물 추락사고, 6월 울산 현대중공업 철판 추락사고 등이 잇따랐다. 사고 빈도는 물론이고 후진적 사고 패턴의 반복에다 그 끔찍한 양상까지 몇십년 전의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라면 산재에도 양극화가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위험한 작업은 외주화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치명적인 산재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나 하청·협력업체 노동자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화학·중공업 등 위험 요인이 많고 사고의 치명성이 높은 사업장일수록 더 안전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고가 되풀이되는 걸 보면 안전불감증이 치유 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다. 더구나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대기업들이 산재의 주범이 되다시피 한 현실은 우리 기업이 외형만 키웠을 뿐 가치와 윤리 차원에서는 후진국 시절에 고착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안전 개선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곤궁한 처지의 비정규직을 위험 작업에 몰아넣는 비인간적인 이윤 추구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해도 너무할 정도로 반복되는 노동 현장의 사망 사고를 막는 길은 결국 외부의 강한 규제밖엔 없다. 위험 작업의 외주화를 원천 차단하고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방안과 함께 중대 사고의 경우 기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획기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이런 규제까지 산업 발전을 해치는 암덩어리로 취급한다면 우리 사회의 수준은 70~80년대 후진 독재국가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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