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유신시대에는 매일 정해진 시각마다 멈추거나 일어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야 했다. 걸핏하면 정보부 지하실로 사람들을 끌고 가 고문하고 젊은이들의 헤어스타일과 치마 길이까지 국가가 통제하던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풍경이다. 그런 모습을 지금 되살리려는 듯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4일 실시된 세무직렬 9급 공무원 면접시험에선 ‘애국가 4절을 불러보라’거나 ‘태극기의 4괘 이름’ 또는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질문이 여럿 나왔다. ‘올바른 공직가치관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앞서 인사혁신처는 모든 국가직 공개채용 시험에서 공직가치와 직무능력을 심층 검증하는 쪽으로 면접시험의 비중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공직가치관을 확인하겠다며 고작 끄집어낸 것이 낡고 녹슨 과거의 유물이다. 애국심을 정해진 형식에 맞춰 표현하도록 모두에게 강요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을 비국민으로 공격하는 행태는 유신 이전 일본제국주의의 망령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바로 일제의 ‘황국신민의 서사’의 모방품이다. 그런 구닥다리 시대착오를 애국으로 착각하는 몰역사성과 무지로는 유능한 공무원을 배출할 수도, 시대를 이끄는 창의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애국심은 그렇게 외워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애국을 강조한다고 해서, 총리가 애국가 4절을 못 외는 검사들을 질타했다고 해서 대뜸 공무원시험에서 그런 문제들을 묻겠다고 나서는 모습부터가 권위주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코미디’다. 그런 후진적 행태는 이제 없어질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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