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만 회원을 거느린 재향군인회(향군)가 회장 선거 과정에서의 대의원 매수 의혹 등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선거에서 당선된 조남풍 회장이 취임 이후 보인 갖가지 납득할 수 없는 행태가 도마에 오르면서 향군 사상 처음으로 노조까지 결성됐다. 향군의 ‘돈 선거’ 의혹은 그동안에도 수차례 불거졌으나 이번 경우는 쉽게 흐지부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주목할 대목은 조 회장이 ‘신주인수권부사채 횡령 사건’이라는, 향군에 큰 금전적 피해를 입힌 관계자 쪽으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시인한 점이다. 신주인수권부사채 사건은 최아무개 전 향군 유케어사업단장이 2011년 향군 허락 없이 4개 상장사에 향군 명의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줘 향군에 790억원의 손해를 입힌 사건이다. 조 회장은 노조 쪽과의 대화 도중 “그 사람한테만 (돈을) 꾼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횡령 사건 관계자 쪽과 금전 거래가 있었음을 사실상 실토했다. 회장 선거를 앞두고 무슨 목적으로 얼마나 돈을 빌렸는지, 왜 하필이면 향군에 피해를 끼쳐 재판이 진행중인 상대 쪽에서 돈을 빌렸는지, 그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 의구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조 회장은 취임 이후 최씨가 대표이사였던 회사의 부회장을 지낸 조아무개씨를 새 경영본부장으로 영입했다. 그뿐 아니라 새로 선임한 경영진단 위원들에도 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이 대거 포함됐다. 향군에 피해를 끼친 사람들이 ‘점령군’으로 들어온 격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향군 내부의 반발로 조 본부장 등이 자리에서 물러나긴 했으나, 향군 안에서는 “조 회장이 횡령 사건 관계자들한테 금전적 도움을 받는 바람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각종 의혹들에 대해 조 회장 쪽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펄쩍 뛰고 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조 회장 쪽이 일부 대의원들을 상대로 수백만원씩의 돈을 뿌렸다는 정황이 기록된 문서가 나오는 등 조 회장 쪽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리는 양상이다. 결국 이런 모든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명쾌히 진상을 규명하는 방법밖에 없다. 안보 문제 등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막상 부패의 덫에 빠져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향군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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