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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서울대 공대 백서’가 울리는 경고음

등록 2015-07-13 18:33

서울대 공과대학이 최근 내놓은 ‘좋은 대학을 넘어 탁월한 대학으로’라는 백서는 양적인 성장을 이뤘을지언정 질적 성과에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우리 대학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백서라고 할 만하다. 대학 풍토를 야구에 빗대 “번트를 치더라도 꾸준히 1루에 진출하는 타자”만 양산한다고 비판하며 “학문의 세계에서는 만루 홈런(탁월한 연구 성과)만이 기억된다”고 지적한 대목은 뼈아픈 자기반성이다. 그 원인으로 “교수들에게 단기간에 성과를 보일 것을 강요하고 연구의 질보다 양을 강조하는 시스템” 등을 짚으면서 “탁월한 연구 성과는 언제 얻을 수 있을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낮은 성공 확률에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는 서울대 공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 전공 분야로도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이다. 논문 수나 인용 빈도 등 객관화한 지표로 연구 업적을 평가하는 흐름이 자리잡으면서 연구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교수들이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과도한 외부 활동에 나서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투자 규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 나라 가운데 22위 수준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 지원이 부족하고, 그나마의 지원도 관료주의적 방식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려면 자율성과 창의성이라는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대학 정책에서 산업계 인력 수요와 취업률 등을 앞세우는 식의 접근부터가 이에 역행한다. 백서가 지적하듯 “우리나라의 산업이 빠른 추종자에 머무른다는 점”이 새로운 연구 성과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데, 대학이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는 못할망정 보조적인 위치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 대학 사회가 더 많은 자율을 구가할 수 있어야 ‘만루 홈런’을 노리는 창의적 연구도 활발해질 수 있다. 공대뿐 아니라 인문학·기초학문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번 백서는 대학이 더 이상 국가경쟁력을 떠받치는 기둥이 아니라 정체된 기득권 사회일 뿐이라는 통렬한 경고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교수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대목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미래를 이끌 진취적 인재를 키우기는커녕 안정적 직장을 얻기 위한 자격 쌓기로 변질하고 있는 대학 교육도 함께 돌아볼 일이다. 정책 당국과 각 대학이 이런 문제의식을 절실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라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백서의 경고는 어느새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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