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의 선거구를 획정하는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15일 첫 회의를 열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는 작업은 여야 간, 지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라 조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엔 여야 정당의 주고받기식 짬짜미로 불합리한 선거구 조정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이번엔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학계·시민사회단체 인사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획정위원회 활동이 중요해진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 투표 가치의 평등권 보장을 위해 선거구 인구편차를 현행 ‘3 대 1’에서 ‘2 대 1’로 조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르면 아무래도 인구가 적은 농촌 선거구는 일부 통폐합되고, 인구가 많은 도시의 선거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걸 피하기 위해 2008년엔 대도시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는 편법을 썼다. 이번 선거구획정위원회는 비록 여야 추천이긴 하지만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로 구성된 만큼, 현역 의원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공정하게 선거구를 조정해야 한다.
표의 등가성 실현에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하는 일이다. 또 소선거구제 속성 탓에 특정 지역의 다양한 정치적 색깔이 의석엔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일이다. 그래야 지역 갈등을 완화하고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을 확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절실하다. 현역 의원의 정치생명이 달린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전체 국회의원 의석을 늘려서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겨레>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최근 조사를 보면, 국내 정치학자의 77%가 국회의원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가령 전체 의석을 현행 300석에서 330석으로 늘리면, 지역구 의석(현 246석)을 줄이지 않더라도 비례대표 수는 상당히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중앙선관위가 2월에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도 적극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면 현재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과 세비를 좀 축소해서 의원 정수 확대에 쓰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
정치인과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국회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어야 정치·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분열도 완화할 수 있다. 국회가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의원 수를 줄이는 게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국회의원들이 세비를 받는 만큼 제 몫을 하도록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건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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