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통합의 명분을 걸고 추진하는 광복절 특별사면의 핵심이 결국 ‘비리 경제인 풀어주기’란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16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사면 대상에 경제인을 포함해달라’는 당의 건의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이 건의하고 대통령이 검토하는 모양새지만, 당청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여론 비판이 거센 ‘경제인 사면’을 관철하기 위한 수순에 돌입한 것처럼 보인다.
며칠 전 박 대통령이 갑자기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위해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긴 하나, 그래도 이렇게 빨리 경제인 사면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배포가 놀랍다. 그러면서 노동단체들이 반대하는 노동시장 개편은 차질없이 추진해달라고 당 지도부에 당부하니,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 통합’의 국민은 기업인만 뜻하는 건지 의아할 뿐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낮춰 잡았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인을 사면하면 투자가 활성화되어 경제가 좋아진다’는 주장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적 없는 가설일 뿐이다. 새누리당 안에서도 이혜훈 전 최고위원 같은 이는 “투자 활성화, 경제살리기 명목으로 수십년 동안 경제인을 풀어줬다. 그러나 (재벌 총수들을 특별사면한) 2008년과 2009년 경제성장률은 전년도에 비해 오히려 2%포인트 이상씩 더 내려앉았다”고 지적한다. 왜 이런 자료엔 눈을 감고 근거가 빈약한 믿음에만 기대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비리 경제인의 사면은 국민의 법 감정을 왜곡하고 우리 사회 고질인 부정부패를 뿌리뽑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김영란법’을 처음 제안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우리나라 부패인식지수가 낮은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횡령·배임했다는 대기업 총수들을 계속 풀어주고 사면 복권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게 진정 비리 경제인에 대한 준엄한 사법적 제재인지 정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나는데도 대통령의 사면권을 보장한 건, 그걸 통해 정치적 통합을 이루고 분열을 치유하라는 뜻이 크다. 박 대통령이 “경제인 사면은 납득할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한 것도 그런 차원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경제인 사면을 밀어붙이기 전에 먼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사면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 있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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