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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대선개입 사건까지 정권 눈치 본 대법원

등록 2015-07-16 18:36수정 2015-07-16 22:01

대법원이 16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통령선거 개입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 환송한 것은 정권의 입맛에 맞춘 판결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성싶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정치개입이긴 하되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1심의 기묘한 결론으로 돌아가자는 얘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 위반이 확정되면 정통성을 의심받게 되는 정권으로선 고마운 판결이겠다. 실제로 이를 염두에 뒀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판결은 법률적 기교를 활용한 ‘줄타기’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선거법 위반의 유무죄 여부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원심이 선거법 위반을 유죄로 인정한 중요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댓글 공작에 참여한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디지털 문서를 두고, 원심은 장기간에 걸쳐 별다른 의식 없이 업무상 계속 작성해온 통상문서이므로 당사자가 부인해도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봤다. 같은 문서를 두고 대법원은 개인 신변잡기나 조악한 내용도 있어 업무용으로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당사자가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는 문서라고 판단했다. 굳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문서가 대선 시기 댓글 공작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다른 증거로 이어진다는 점에선 더욱 수긍하기 어렵다. 이런 판결은 1심의 결론 쪽으로 은근히 물길을 돌린 것이 된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대선 기간에 선거 관련 글이 급증하는 등의 사실이 있으면 정치개입이 아니라 선거개입”이라는 항소심의 상식적 판결을 교묘하게 깨어버렸다.

대법원이 하급심의 전향적 판결을 뒤엎는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고,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킨 2심 결정도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과거사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들도 새 판례까지 만든 대법원에서 줄줄이 뒤집혔다. 하나같이 재계 등 기득권층의 이익을 배려하고 정부의 편의를 앞세운 보수적 판결이다. 이번 판결도 비슷하다. 이러고서 어떻게 대법원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법적 기준을 제시하는 정책법원이 되겠다는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이번 판결은 최근의 국정원 해킹 의혹과 맞물려 더 불신을 받게 됐다.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도입은 원 전 원장이 결정했고, 그 시기도 댓글 공작이 벌어지던 때와 겹친다. 그런데도 선거개입이 아니라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 된다. 여러모로 한심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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