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이 6·25 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를 문제삼아 취재부서 책임자들을 느닷없이 평기자로 발령하는, 기이한 징계 인사를 했다. 보도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을 때도 절차와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이것을 무시한 게 문제다.
한국방송은 6월24일 9시 뉴스를 통해 ‘6·25 전쟁 발발 이틀 뒤인 6월27일 이승만 정부가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싶다고 알려와 일본 외무성이 야마구치현에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야마구치현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지방정부 비상조치 계획서를 근거로 야마구치현이 막사 250개를 세워 5만명을 수용할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이승만 정부는 망명을 타진했지만 실행하진 않았다고도 했다. 그 직후 보수단체들과 이승만기념사업회가 항의하자, 한국방송은 7월3일 ‘이승만기념사업회 망명정부설 부인’이란 제목으로 꽤 긴 분량의 반론보도를 내보냈다. 이어 7월14일 기사를 취급한 부장, 국장급 간부 네 사람을 하루아침에 강등시켰다.
이승만기념사업회는 보도가 중앙정부가 아니라 일본 지방정부 자료에 근거했고, 자신들의 반론도 붙이지 않았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기사를 보면 지방정부 자료라 하나 나름의 역사 기록을 인용했다.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존 무초 미국 대사한테 정부의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는 다른 기록도 있는 만큼 면밀하게 추가 취재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반론은 합당한 절차를 거쳐 반영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방송은 보수단체의 이의제기에 화들짝 놀라 허둥대면서 진실 보도의 사명 자체를 포기하는 듯이 행동했다. 반론 방송 형식부터 백기 투항에 가까운데다 간부들을 모조리 강등시켰으니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어떤 기자가 민감한 주제를 취재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뉴라이트 성향의 ‘이승만주의자’인 이인호 이사장이 임시 이사회까지 소집하며 보도국을 압박했다고도 한다. 연임이 걸린 조대현 사장이 이사장 눈치를 보느라 무리하게 처신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사장과 경영진이 언론의 정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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