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 진행된 삼성-엘리엇 공방전이 삼성의 ‘주총 승리’로 일단락됐다. 아니나 다를까, 재계를 중심으로 이참에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 보호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제2, 제3의 엘리엇이 등장할 싹을 아예 잘라버리자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삼성-엘리엇 대결의 본질을 호도할뿐더러, 이번 사태의 교훈을 엉뚱한 방향에서 찾는 어리석은 행위다.
국내 대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높은 건 사실이다. 삼성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에스케이(SK) 등 국내 재벌계 핵심 계열사 가운데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웃도는 곳도 여럿이다. 저금리로 수익성이 떨어진 행동주의 펀드들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내 지본시장을 눈여겨봄직도 하다. 반면, 여러 나라가 도입한 경영권 방어수단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1주에 여러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주나,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 노출됐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값에 지분을 사도록 허용하는 포이즌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외국인 지분이 높다고 해서 곧장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이 위험에 빠지지는 않는다. 기업의 미래를 내다본 포트폴리오 투자자도 많을뿐더러, 국내 대기업들은 총수 일가 외에도 임원, 관계회사, 자사주 지분을 모두 더한 내부지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은 지금도 충분히 강력한 셈이다. 게다가 현행 법체계에서도 정관 개정을 통해 경영권 방어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외국인이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선 산업통상자원부 허가를 얻어야 하는 기업도 93개(2013년 기준)나 된다.
삼성-엘리엇 공방전을 불러온 근본 원인은 경영권 보호장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후진적인 경영 관행과 취약한 지배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실타래처럼 얽힌 순환출자 구조 속에서 무리하게 승계작업을 추진하다 보니,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격 기회를 내준 엄연한 현실을 왜 감추려 드는가.
국내 대기업이 외국계 헤지펀드 등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국민경제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게 옳다. 제도적 보완을 위한 진지한 논의도 필요하다. 다만 시장과 사회의 신뢰를 얻는 일이 우선이다. 기업 스스로 환골탈태하는 ‘정공법’을 택하지 않는 한, 섣부른 경영권 보호장치 강화는 현재의 낡은 구조에 되레 힘을 실어줄 뿐이다. 그건 우리 사회를 위한 해법이 아니라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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