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일 국가인권위원회 다음 위원장으로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내정했다. 인권위가 현병철 현 위원장의 재임 6년 동안 사실상 식물기구로 전락해 나라 안팎에서 우려의 대상이 된 터다. 인권위 제자리 찾기를 위해 비상한 성찰이 필요했는데 인선 과정과 결과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지금의 ‘현병철 인권위’는 ‘봉숭아학당만도 못하다’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국민 인권을 위협하는 온갖 사안이 터져나와도 철저히 외면했고, 운영을 둘러싼 파행과 잡음만 수시로 불거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나 통합진보당 해산,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발호 등 주요 현안을 삭제하거나 축소해 유엔기구에 왜곡 보고하는 짓까지 했다. 오죽하면 세계 120개국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정기 등급 심사에서 우리나라 인권위에 ‘등급 보류’ 판정까지 내렸겠는가. 그동안 나름대로 인권 선진국으로 주목받아온 우리나라로선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인권위의 식물기구화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연속으로 인권 개념을 전혀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으로 일방적으로 ‘내리꽂아’ 임명한 데서 비롯했다. 대표적으로 현병철 위원장은 법학자 출신이라고 하나 인권 감수성을 키울 만한 사회 경력이 전혀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으로 임명된 한 인권위원은 성소수자를 차별한 전력이 드러났다. 국제조정위가 한국 인권위원을 선임할 때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투명한 인선 절차를 마련하라고 권고한 게 무리가 아니었다.
이성호 인권위원장 내정은 무엇보다 국제기구가 요구한 투명한 인선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임명함으로써, 위원장이 직무를 수행할 때 또다시 청와대 눈치나 볼 가능성이 염려된다. 법조인 인사가 되풀이된 점도 문제다. 이 내정자는 내내 법관으로 활동했고, 인권과 관련된 활동 이력이나 전문성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현재 11명의 인권위원 가운데 법조인이 8명에 이르러 특정 직역이 과잉 대변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인권위는 때로 법 테두리를 뛰어넘어 인권 개념을 확대하도록 하는 정책적 목소리를 내야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인권위원 인선과 관련해 다양한 개선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정부가 무시한 점이 유감스럽다. 인권위의 위상을 무너뜨리고 나라 망신까지 시킨 ‘현병철 인권위 2탄’이 되지 않도록 국회 청문회 등 다음 단계에서라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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