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23일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등 당사자들의 최종 동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좀체 좁혀지지 않던 의견 차이를 대체로 성공적으로 조정한 것으로 보여 환영할 만하다. 2007년 황유미씨의 죽음을 계기로 드러난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가 8년 만에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해결의 길을 찾게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조정위는 보상과 사과, 재발방지 등 세 의제에 대해 함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피해에 대한 보상만큼 현직 노동자들을 위한 예방대책도 미룰 수 없으며, 불행을 겪은 개개인에 대한 사과와 함께 건강한 노동현장을 구현해야 한다는 사회적 다짐 역시 중요하다는 인식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의견차가 컸던 보상 범위와 관련해선 피해자 쪽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삼성전자의 애초 보상안이 혈액암·뇌종양·유방암만 보상 대상으로 인정하고 최소 재직기간을 5년까지 요구한 것부터가 무리한 주장이었다. 조정위 권고안은 최소 근무기간을 1년으로 하고, 대상 질병을 28종으로 늘렸다. 중대한 장애를 수반하는 희귀질환 등에 대해선 유해물질 발생 가능성이 인정되면 인과성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도록 한 대목도 눈에 띈다. 그동안 반도체 공장의 질병에 적용되는 산재인정 기준에 대해선 의학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작업환경과 질병의 연관성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비판도 무성했던 터다. 이번 권고안이 그런 잘못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권고안은 삼성전자 등의 기부금으로 조성되는 공익법인이 보상과 예방대책 사업을 맡을 것을 제안했다. 이번 같은 불행이 다시 없으려면 삼성전자가 스스로 밝힌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 강화를 말 그대로 실행하는 것과 함께 외부에서 이를 확인하고 감시하는 활동이 중요하다. 생산현장의 유해물질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라도 영업비밀이라는 핑계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유해물질 정보공개의 원칙과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방안은 삼성전자 외에 다른 사업장에도 적용돼야 할 것이다.
이번 조정은 분쟁을 소송 없이 해결하는 대체적 분쟁해결의 좋은 모델이다. 사회적 합의기구가 제구실을 할 수 있게 되면 갈등 해소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번 경우가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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