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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주한미군 ‘탄저균 프로그램’ 폐기해야

등록 2015-07-24 20:14

‘살아있는 탄저균 배달’ 사건과 관련해 미국 국방부가 23일(현지시각)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내용이 허술하고 미국 정부의 태도도 무책임하다. 이런 탄저균 실험이 계속 허용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방부에 의한 살아있는 탄저균 포자의 부주의한 배달’이라는 보고서 제목부터 문제가 있다. 탄저균 배달은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탄저균은 지난 10년 동안 미국과 지구촌 7개국의 86개 시설에 배달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보고서는 국방부 요원들이 관행을 따랐다고 하면서도 정확한 원인이 뭔지는 적시하지 않았다. 아울러 책임져야 할 주체도 특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미국은 기본적인 통제 역량조차 갖추지 못한 채 지구촌 전역에서 탄저균 실험 시설을 운용해온 것이다. 이는 미국이 이제까지 내세운 ‘사람의 실수’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군 관련 연구소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실험 시설은 더 우려스럽다. 주한미군은 지난 5월 하순 경기 오산 미군기지로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돼 22명을 격리하는 등의 조처를 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시설에 대한 정밀조사는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지지부진하다. 지난 15일 처음으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 합동위원회가 열렸으나 협정 개정이 아니라 협정 운영 및 절차를 개선하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실험 유지를 전제로 한 소극적인 태도다. 국내 몇 곳의 실험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군의 탄저균 밀반입은 생물무기의 개발·생산·비축과 직간접 양도를 금지한 생물무기금지협약에 위배된다. 나아가 투명하지 않은 탄저균 실험은 공격용 생화학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보듯이 미군은 사후대응보다 사전대응에 주력하는 자신의 생화학전 방침에 따라 무리하게 실험실을 운용해왔다. 우리 정부가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은 물론 관련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한 것은 이런 구조의 귀결이다.

지금의 문제는 기술적 절차를 개선하는 정도로는 해결할 수 없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프로그램은 즉각 폐기해야 한다. 그래도 생물무기에 대비한 탄저균 실험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모든 요소를 고려한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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