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서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받기로 하는 약정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사나 재판의 결과 하나하나를 금전적 대가와 결부시킴으로써 변호사 직무의 공정성을 해치고 사법제도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금지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착수금과 차후 성공보수로 구성된 변호사 수임 방식이 크게 바뀌게 됐다. 판결의 기대대로 사법현실 개혁의 계기로 이어지기 바란다.
이번 판결은 기형적으로 고착돼온 우리 변호사업계의 관행을 겨냥한 것이다. 주요 사법선진국들이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를 금지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치게 거액이 아니라면 민사건 형사건 성공보수를 인정해왔다. 그러다 보니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 결과에 따라 성공보수가 오가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 수사팀이나 재판부와 인연이 있는 변호사를 수소문해 선임하는 것도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전관예우의 악습은 이런 관행과 함께 번성했다. 전관 변호사가 수사나 재판의 결과에 따라 거액의 성공보수를 챙기는 일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의뢰인들은 변호사가 어떻게든 사건 결과를 바꿀 것이라는 그릇된 기대를 하게 됐고, 수사와 재판의 결과를 그런 부당한 영향력 때문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따위의 사법불신이 그래서 싹텄다.
대법원은 이런 현실이 사법부패 혹은 형사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 실추로 이어진다고 판단했다. 변호사가 대가 수수 관계로 전락하는 것도 정의의 실현에 협력해야 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과 윤리성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성공보수를 사회질서에 반하는 무효 행위로 판결한 이유다.
이번 판결로 변호사 시장은 큰 요동을 겪게 됐다. 가뜩이나 수임난을 겪는 상당수 변호사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임료 방식이 바뀌면 되레 의뢰인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거나, 성공보수 없이 변호사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느냐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국민이 잘못됐다고 여기는 비정상은 이제라도 바로잡는 것이 옳다.
대법원은 상고이유에 없었던 성공보수 문제를 굳이 직권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 무효라고 판결했다. ‘앞으로는 무효’라는 판결 내용도 실은 국회의 입법에 맡기는 게 더 온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사법현실에 큰 영향을 미칠 판결을 단행한 것은 최근 표방해온 정책법원의 위상을 분명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려면 대법원 자신도 국민이 비판하는 스스로의 비정상과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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