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지구촌 지식인들이 29일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지향하며 일본의 과거사 청산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2010년 일제의 조선 강제병합 100돌에 맞춰 한·일 지식인 1000여명이 낸 성명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식민지배는 한국인의 뜻에 반해 실시된 것’이라고 인정했듯이, 아베 신조 총리 또한 ‘전후 70돌 담화’에서 침략과 식민지배의 잘못에 대해 분명한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성명에서 밝혔듯이 동아시아는 지금 150여년에 걸친 서양화의 긴 터널을 벗어나 스스로 아시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사의 입구에 서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주변, 휴전선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그 원인의 하나로 꼽히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군산복합체 주도형이 아니라 평화산업과 시민사회 주도형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전적으로 옳다. 중국의 경제대국화와 군사적 정비가 갈등 요인이 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의 태도다. 특히 우파 정치인들은 ‘거짓의 역사신화’를 확산시키면서 이전의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의 내용까지 뒤집으려 한다. 아베 총리는 이들과 손을 잡고 과거 회귀와 군사대국화를 추진해왔다. 8월 중순께 발표될 ‘아베 담화’를 총리 개인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침략’은 언급하되 ‘식민지배와 사죄’라는 표현은 뺄 거라는 보도도 나온다. 한국과 중국을 분리시키려는 이런 꼼수는 역사 갈등을 더 키워 동아시아의 앞날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지구촌의 지식인들이 함께 나선 것은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지구촌 전체의 앞날을 위해서다.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한 행동을 아베 총리에게 촉구하는 일본 시민들의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이들의 요구대로 아베 총리는 기존 담화를 계승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 길만이 평화롭게 공생하는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 속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동아시아를 뒷받침한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과거로부터의 자유’도 있을 수가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