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고용노동부의 월권이 도를 넘었다. 6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합법화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도 잇따라 이주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더니,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10여명이 결성한 노조의 설립신고서마저 퇴짜를 놨다고 한다. 누구보다 노조가 필요한 약자 중의 약자를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훼방이나 일삼고 있으니 노동부·노동청이란 이름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조 규약 가운데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등의 내용을 문제 삼아 노조로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노동조합법이 금지하는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노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합법화 등은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밀접한 사안이며, 이런 노동 관련 법률·정책을 바꾸기 위한 노조의 정치활동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 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은 1997년 폐지됐다. 현재 금지된 것은 정치활동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노조인데, 이주노조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근거는 상식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전혀 없다. 결국 고용노동부의 잇따른 설립신고서 반려는 어떻게든 이주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법원 판결을 깔아뭉개는 처사이다.
대전·충북지역 하청 노동자들이 결성한 ‘장그래 꽃분이 노동조합’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면서 대전고용노동청이 밝힌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노조 규약에 “(조합원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조합원의 공동이익을 옹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 대목에서 ‘정치’라는 단어를 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규약의 맥락을 볼 때 정치활동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노조가 아님은 명백하다. 다른 노조 규약에도 들어 있는 통상적인 문구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온종일 선 채로 일하고 휴가·휴식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이들이 노조를 결성한 목적은 열악한 근로조건의 개선일 뿐이다. 이런 분투마저 ‘정치’라는 단어 하나에 꼬투리 잡혀 가로막히는 게 오늘날 일터의 현실이다.
노조의 정치활동에 신경증적인 반응을 보이는 정부의 태도는 법을 왜곡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신과 관련된 법률·정책 개선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까지 오도할 수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노사정 대화를 통한 노동개혁이 이뤄지려면 그 한 축인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의사 결집과 표출이 전제돼야 한다. 정부 스스로 그 전제를 무너뜨리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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