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일행 18명과 함께 5일부터 나흘 동안 북한을 방문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집권 이후 가장 비중 있는 인사의 방북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이 이사장과 만날 거라는 예상도 많다. 이번 방북은 꽉 막힌 남북관계를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
양쪽 당국이 이번 방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보이는 건 유감스럽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3일 이 이사장을 찾은 자리에서 ‘특별히 전해드릴 (대북) 메시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북 제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방치하는 듯한 태도다. 북쪽도 이 이사장의 방북과 관련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이번 방북단이 김대중평화센터와 이 이사장이 설립한 인도적 지원단체인 ‘사랑의 친구들’ 관계자 중심으로 구성된 것은 이런 분위기를 고려했을 법하다. 하지만 ‘정치성’을 억지로 배제하려는 이런 시도는 남북관계에서 서로 운신의 폭을 좁힐 뿐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있다. 당국 사이 접촉이 끊긴 채 상대에 대한 비난만 난무한다. 6·15 공동선언 15돌 공동행사 불발에 이어 8·15 70돌 공동행사도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은 중단된 지 7년 가까이 됐지만 재개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북한 노동당 창당 70돌인 10월10일을 전후해 한반도 긴장이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이 이사장은 북쪽 당국에 남북관계 개선의 당위성을 분명히 전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이사장은 “6·15 공동선언의 조항을 남북 양쪽이 다 지키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이사장은 인도적 문제, 예컨대 북쪽이 억류한 남쪽 국민 4명의 석방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북쪽은 이 이사장 일행을 환대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쪽은 이 이사장의 방북을 새로운 남북관계로 향하는 밑거름으로 삼기를 촉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북쪽이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남북관계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남쪽에 있다. 정부 의지가 확고하다면 남북관계를 풀 방안은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다. 이번 방북의 성과가 어떻든 남북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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