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형사합의부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고교 선배인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각각 재배당했다. 지난달 20일 이 법원이 재판부와 이런저런 연고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된 형사 사건의 재배당 원칙을 밝힌 뒤 첫 사례다. 앞서 7월에도 이 법원은 항소부 재판장 등과 연고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된 형사 항소 사건 2건을 재배당한 바 있다. 이런 조처는 재판부와 안면이나 연고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잘 봐줄 것’이라는 법원 주변의 오랜 공정성 논란을 원천 차단하고 재판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재판부와의 이런저런 연고를 따져 변호사를 물색하고 그렇게 선임한 변호사가 재판부에 ‘잘 말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 사법 현실의 오랜 악습이다. 재판장이나 담당 판사와 고교 동문이라거나 대학 혹은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따위의 인연을 내세워 사건 브로커가 변호사를 소개해주고 구전을 뜯는 법조 비리도 여기서 싹텄다. 같은 재판부나 같은 업무부서에서 근무했다는 인연으로 ‘전관예우’의 혜택을 받는 게 아니냐는 불신과 의혹도 적지 않았던 터다. 학연·지연·근무연 따위가 고액 수임료의 핑계가 되고, 재판 결과가 그런 돈의 대가 혹은 연고를 앞세운 로비의 결과인 양 포장되면서 사법 불신은 날이 갈수록 굳어졌다. 서울중앙지법의 이번 조처는 그런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고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조처가 없는 제도를 새로 만든 것은 아니다. 소송법에는 법관이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사건을 스스로 피할 수 있도록 한 회피 제도가 있고, 재판예규에는 연고관계가 있는 변호사의 선임으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가 우려되면 재판장이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규정을 좀더 구체화해 적극 활용한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제도를 굳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에 한정할 이유는 없다. 판사 한 사람이 맡는 형사 단독 사건은 물론, 사회적 관심이 많은 중요 사건이 모이는 서울고등법원을 비롯해 다른 일선 법원에도 널리 확대 적용하는 게 마땅하다.
무엇보다 대법원이 동참해야 한다. 친분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주심 대법관이나 재판부 스스로 회피함으로써 대법원이 전관예우 척결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하급심 법원의 자정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변호사들도 이런 조처를 빠져나갈 샛길을 찾으려 할 게 아니라, 연고주의의 악습을 끊는 데 스스로 협조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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