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교체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보인 정부의 총체적 무능에 책임을 져야 할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임 장관은 메르스 사태를 통해 드러난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심각한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진엽 후임 장관 내정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런 막중한 임무의 적임자라고 보기 힘들다.
정 내정자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분당서울대병원장을 지내며 의료정보시스템 구축 등에서 성과를 냈고,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의료정보시스템을 수출하는 데도 일조했다. ‘제2의 중동붐’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눈에 들었음 직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메르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은 정보기술 능력이 뒤떨어져서가 아니었다. 의료 수출을 할 만큼 첨단 의료기술에서는 앞서나가는 반면, 감염병 예방·대처와 같은 기본적인 공공의료 분야가 지체되고 응급실·간병제도 등 일반 환자를 대하는 의료체계가 후진적이었던 데 원인이 있었다. 정 내정자가 평소 이런 문제를 깊이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정 내정자가 병원장 시절 원격의료를 적극 추진했고 관련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의료 산업화에 치우친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든다. 원격의료는 산업적 측면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의료적으로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고 지역 병원의 타격과 대형병원 쏠림 현상의 가속화 등 부작용이 예상되는 제도다. 또 정 내정자는 병원 인력의 외주화를 통해 수익을 내고 이를 성과로 여겼다고 한다. 2012년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현황을 보면 분당서울대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았다. 병원 인력의 비정규직화가 환자 안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확인된 바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1차 의료기관을 강화하는 등 대형병원 위주의 불합리한 의료공급 체계를 수술하고 영리 위주의 병원 경영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지금, 이와 정반대의 흐름을 주도했던 인물을 장관에 앉히는 건 부적절하다.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를 뒷전으로 돌린 채 의료 영리화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7년 만에 의사 출신 장관이 배출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의사협회가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 내정자 발탁을 지켜보며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의 교훈을 제대로 새기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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