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재벌 지배구조를 손질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노동개혁과 재벌개혁의 동시 진행”을 주장하며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시즌2’에 힘을 집중할 태세다. 새누리당도 6일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관계자들을 불러 당정회의를 열 예정이다.
롯데그룹을 향한 정부·여당의 압박 수위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는 해외 계열사의 주주 및 출자 현황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롯데에 요청했다. 호텔롯데가 지분을 가진 대홍기획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중인 국세청도 계열사 전반을 상대로 자금 이동 경로 파악작업에 나설지 검토에 들어갔다. 여당 안에선 올해 말로 끝나는 롯데의 면세점 특허 기간 연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6일 열릴 당정회의에서 기존 순환출자 금지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다루기로 한 대목이 눈에 띈다. 현재는 정부·여당의 강한 반대 때문에 신규 순환출자 통로만 막혀 있다. 하지만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번 롯데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롯데 사태는 지분 2.41%를 쥔 총수 일가가 460여개에 이르는 미로와도 같은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장악한 데서 비롯됐다. 기존 고리를 끊어내지 않고서 어찌 제2, 제3의 롯데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라 장담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선공약집엔 “순환출자가 대규모 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불투명한 지배체제 구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그 해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 도입, 다중대표소송제 의무화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약속만 제때 지켰더라도 하나같이 롯데 사태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장치들이다. 하지만 2013년 여름 재벌 총수와의 청와대 오찬 이후 경제민주화 공약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롯데 사태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후퇴가 낳은 비극인 셈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이미 국회엔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취지를 충분히 살린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안이 여럿 계류돼 있다. 정부·여당의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재벌개혁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정부·여당은 이제라도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약속을 말이 아닌 실행으로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당장 급한 불이나 끄고 보자는 식으로 개혁 시늉이나 하는 데 그친다면 제2, 제3의 롯데 사태는 조만간 또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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