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사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일방통행’ 개혁 담화

등록 2015-08-06 18:28수정 2015-08-06 22:57

박근혜 대통령의 6일 대국민담화는 역시 일방통행식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애초 예정됐던 기자들과의 일문일답도 취소돼 박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메르스 사태,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 사건 등 국민이 궁금해하는 여러 현안들에 대해서는 입도 열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정부의 무능한 대처로 엄청난 사망자와 경제적 손실을 낳은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고 넘어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런 관측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박 대통령의 마음속에는 애초부터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 의식도, 미안하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이 시점에 대통령 대국민담화를 기획한 목적은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방향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담화의 내용과 형식 모두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없었다. 박 대통령에게 국민은 여전히 지시와 훈시, 교육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런 대국민담화로 여론이 돌아서고 국정운영의 동력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이날 집권 후반기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한 노동개혁도 마찬가지다. 현행 노동시장 구조를 손질하고, 심각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위성에 이론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개혁의 방향과 방법이다. 노동과 자본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기업에 있는데도 박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양보와 타협만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낮은 임금-쉬운 해고’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청년실업 문제를 세대간 밥그릇 싸움으로 치환해버린 대목 역시 심각하다. 박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며 임금피크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가 고용증대 효과가 있을지 불분명하다는 것은 이미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기존 정년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민간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임금피크제는 자칫 신규채용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기업에만 이득을 안겨줄 공산도 크다. 박 대통령이 막대한 사내보유금을 쌓아놓고도 일자리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의 행태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대목은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접근방식에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이날 또다시 교육, 금융 등 사회 전반의 개혁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알맹이를 놓친 공허한 외침이라는 느낌을 금하기 어렵다. ‘경제 대수술’을 언급하면서도 최근 롯데 사태로 다시금 확인된 후진적인 재벌 기업의 수술 필요성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은 것은 단적인 예다. 개혁은 잘못하면 개악이 된다. 이번 대국민담화를 계기로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노동 개악’에 가속도가 붙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