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3박4일 방북 일정이 8일 마무리됐다. 기대를 모았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면담이 이뤄지지 않은 등 아쉬움이 크다. 남북 당국의 경직된 태도가 남북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임을 잘 보여준다.
이 이사장 일행은 나름대로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짧지 않은 방북 일정 동안 김 위원장이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거나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12월 자신이 친서를 통해 초청한 이 이사장을 직접 만나지 않은 것은 예의에도 어긋난다. 이 이사장의 방북 기간 내내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수준에서만 접대가 이뤄진 것도 유감이다. 웬일인지 아태평화위 위원장인 김양건 노동당 비서는 보이지 않았다. 북쪽이 이번 방북을 철저하게 실무적인 수준에서 대처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이번 방북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던 것도 문제다. 정부는 일찍부터 ‘(이 이사장을 통해 전달할) 대북 메시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이 이사장이 6·15 공동선언에 깊이 관여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및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함께 가기를 원했으나 통일부는 이들이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정치인 동행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방북 목적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북 접촉 경험이 많은 이는 방북단에 한 사람도 포함되지 않았다. 북쪽은 이를 남쪽 정부가 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남북관계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할 당위성도 크다. 이번 방북이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요구가 적잖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 당국 모두 상대에 책임을 미룰 뿐 먼저 행동에 나설 태세는 돼 있지 않다. 이런 경직된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남북관계 개선은 요원하다. 그 대가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난 7~8년 동안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있었던 일이 또 다른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자원은 남쪽이 훨씬 많이 갖고 있다. 우리 정부의 의지에 따라 남북관계가 좌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번 일에서 드러낸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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