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에 이인호 이사장 체제가 연장되게 되었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서 정치 편향을 유감없이 드러내 말썽을 빚던 차기환 변호사는 한국방송으로 옮겨 양사를 넘나들며 3연임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3일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을 뽑은 결과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위상을 실추시켰던 인사들한테 책임을 묻기는커녕 거의 그대로 유임시켰다는 점에서 이만저만 퇴행이 아니다.
이인호 이사장은 첫 재임 기간에 자신의 편향된 역사 인식을 편성에 투영하려고 툭하면 무리한 일을 벌였다. 다큐멘터리 <뿌리 깊은 미래>에 “북한에서 쓴 듯한 내레이션이 있다”고 문제 삼아 조기 종영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최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고 보도한 것을 문제 삼겠다고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보도에 관련된 보도국 간부 4명은 그 뒤 물갈이 보복 인사를 당했다. 이사장의 독단적 행동 때문에 보도의 자유와 편성의 독립성이 뿌리째 흔들렸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심지어 13일치 <중앙일보> 기고를 통해 “광복은 1945년이 아니라 1948년에 이뤄졌다”며 1945년 광복의 의미를 공공연히 부인했다. 역사학자 개인으로서 어떤 사관을 지닐 수 있으나 정부가 광복 70년 행사를 공식적으로 진행중인 기간에, 공영방송 이사장이 튀어도 너무 튀는 행동이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마치 그의 이념적 편향성을 상찬하듯이 연임시켰다. 정권의 선구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방송 이사가 된 차기환씨는 박원순 서울시장 저격수를 공공연히 자임했던 사람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 때는 ‘좌파 선동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문화방송에서 긴급 대담이 열리도록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임원의 정치적 편향이 프로그램을 왜곡시킨 그릇된 사례의 주역이 계속 공영방송에 관여한다면,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은 망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통위의 이번 공영방송 이사 인선은 방송의 공정성보다는 정권에 충성하는 인물들을 다시 앉혀 공영방송사를 지속적으로 장악·통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권력의 임기 후반기 여론관리 포석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훼손으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시청자에게 오게 되어 있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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