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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광복 70돌, 평화복지국가와 통일의 길로

등록 2015-08-14 18:51

광복 70돌을 맞는다. 깊은 어둠을 헤치고 마침내 환한 빛을 찾았던 당시의 감격과 열망을 헤아려본다. 그날 이후 태어난 사람이 인구의 90%가 넘을 정도로 강산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이제 광복 100년을 내다보며 지나간 70년을 결산하고 다가오는 30년을 준비할 때다.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과 고통에 값하는 많은 것을 이뤄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것이 상징적이다. 경제 규모로는 탄탄한 중견국이고, 1인당 소득으로 보면 선진국 수준에 접근했다. 무엇보다 길지 않은 시간에 민주주의를 크게 진전시킨 저력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가 어렵다. ‘한류’라는 말이 지구촌에서 정착될 정도로 우리 대중문화가 퍼지고, 나라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부쩍 늘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독특한 ‘한국 모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서구 나라들과 일본처럼 침략이나 식민지배 없이 이뤄냈다. 겹겹의 모순을 감내해야 했던 민중들의 고난과 남다른 생명력이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한 것만큼이나 해야 할 일도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긴 노동시간, 최저 출산율이 보여주듯이 삶의 질은 그다지 높지 않다. 고질적인 주거·교육 문제에다 빈부 격차와 경제력 집중도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급격한 고령화 추세는 인구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적절한 복지를 누리면서 활력 있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복지국가가 거의 유일한 해답이다. 자신의 것만 지키려는 갈등과 대결을 넘어서 개인과 사회의 지향점이 일치하는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정권에 따라 역주행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민주주의의 심화는 필수다. 책임 있는 시민이 만들어가는 사회가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역사수정주의를 주장하며 과거 친일과 독재정권의 잘못을 옹호하거나 당시 행태를 되살리려는 일부의 시도도 건강한 사회의 적이다.

오랫동안 우리를 옥죈 국제관계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서구 세력이 절정기를 지나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우리가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아시아가 부상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몫이 커졌음을 뜻한다. 동아시아 나라들이 평화롭게 공존·공영하는 체체의 구축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다. 걸림돌이 되는 일제 과거사의 청산은 그래서 중요하다. 주요 2국(G2)으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 경쟁을 강화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흐름이다. 신구 세력의 균형이 바뀌어 전반적인 관계 재설정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평화와 공영이라는 원칙이 뒷전에 밀려서는 안 된다. 최근 우리 정부는 여러 사안을 두고 두 나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반걸음이라도 앞서서 소통하고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올바른 길이다. 진영 대결과 의존 외교 등 시대에 맞지 않는 냉전적인 관행과 사고방식에서는 빨리 벗어나야 한다.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서 지구촌 시민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갈수록 나빠지는 남북 관계와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광복 70돌을 무색하게 한다. 분단된 국토가 통일되지 않으면 광복도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과제는 막중하다.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사고에 기초한 결단이 필요하다. 남북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불거지고 있지만 3차 남북 정상회담은 열릴 수 있으며 열려야 한다. 동시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북한 핵 협상이 이른 시일 안에 반드시 재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 핵 문제 해결 노력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는 정치적 수사로서가 아니라 사실상의 통일이 진전되는 것이기도 하다. 평화 없는 통일은 있을 수 없으며 통일만이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세계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는 미래지향적 의미도 갖는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과제가 있지만 지구촌 전체로도 심각한 문제가 많이 있다. 심각해지는 난민 문제는 빈부 격차와 지배-종속의 역사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나라 안팎의 고통받는 이들과 공감하며 해법 마련에 동참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등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안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숙제에 매달려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시민으로서 우리 역량을 펼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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