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월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돌’(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20일 밝혔다. 늦었지만 당연한 결정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참석해 남북 정상 사이 접촉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번 행사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기리고 화해와 평화의 새 질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는 일찍부터 중국 쪽에 참석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린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미, 미-일 삼각동맹을 주요 축으로 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덮고 한-일 협력만을 강조하는 현상도 갈수록 뚜렷해진다. 우리나라가 이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동북아의 평화·협력 구조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전승절 참석은 한-중 협력을 증진하고 우리의 발언권을 키워 동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전승절에 참석하되 열병식에는 불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다른 행사와 열병식을 분리하기가 어려운데다 열병식을 꺼릴 이유도 없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적은 아니다. 과거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 때 우리 대통령이 북쪽 군대를 사열한 전례도 있다. 중국이 열병식을 하는 데는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열병식 참석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대결적 사고다. 5월 러시아 전승절 행사 때 2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총리가 열병식에 불참한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박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북한 핵 문제 해법 찾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면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은 시급한 현안이자 동아시아 평화의 열쇠다. 북한 핵 문제를 풀려는 중국의 태도는 한-중 관계의 앞날을 가늠할 시금석이기도 하다.
최근 <한겨레>가 국내 외교·안보 분야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정부의 외교 기조는 지속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첨예화하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균형전략을 새로 짜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전승절 참석이 그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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