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총장 직선제 폐지 압박에 저항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현철 부산대 교수를 21일 교직원과 학생, 시민 등 수백명이 흐느낌 속에 영결했다. 정부의 비민주적인 대학 정책에 항의하며 교수가 목숨을 희생한 사건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부산대를 비롯해 강원대·경북대·경상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등 전국 9개 거점국립대학 교수회 연합회는 20일 총회를 열어 국립대 총장 직선제 회복을 위한 투쟁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사태를 몰고 온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국립대 총장 선정 과정에 대한 정부의 무리한 개입이다. 각 대학의 총장 선정 방식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게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 헌법은 물론 교육공무원법 규정과도 모순된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지적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 대학들이 정부 지침에 따라 선정한 총장 후보마저 임용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 거면 애초에 지침은 왜 내린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임용 거부 사유도 일절 설명하지 않았다. 총장 임용을 거부당한 경북대 교수가 낸 소송에서 20일 ‘정부는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판결이 또 나왔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행정의 극치다.
정부가 최소한의 원칙도 없는 ‘난장판 정책’을 고집하는 데는 분명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의심의 눈길은 국립대 총장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가 총장 후보들의 과거 시국선언 참여 여부 등을 검증했다는 증언도 나온 바 있다. 청와대가 마음에 드는 총장만 허용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식이면 독재시대의 총장 임명제나 마찬가지다. 대학에 대한 권력의 장악력은 높아질지 몰라도 대학의 자유롭고 신선한 지적 에너지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 문화융성’과도 모순되는 일이다. 정부가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희생해가며 대학을 장악하는 게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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