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이 이틀째 계속됐다. 판문점에서 23일 새벽까지 10시간 동안 이어진 1차 접촉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시간을 오래 끈 것을 보면 이견이 적잖았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견을 분명히 확인해야 합의로 가는 길도 찾을 수 있다.
청와대가 의제에 대해 “최근 조성된 사태의 해결 방안과 앞으로의 남북관계 발전 방안”이라고 밝힌 것은 긍정적인 전망을 갖게 한다. 군사적 긴장을 가라앉힐 방안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전제로 전반적인 남북 관계 개선책을 논의한다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사태란 북쪽이 매설한 것으로 보이는 지뢰 폭발 사건(4일)과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10일), 북쪽의 서부전선 포격 도발과 우리 군의 대응 포격(20일), 이에 따른 휴전선 지역 긴장고조 등을 말한다. 사실 이들 사태의 가닥을 잡는 것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북쪽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남쪽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것이 무난한 합의 시나리오다. 지뢰 사건과 관련해서는 양쪽의 공동조사가 필요할 수 있다.
남북관계 발전 방안은 어느 선까지의 합의를 목표로 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우선 우리 정부가 중시하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북쪽이 요구해온 대북 전단 살포 억제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적절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그동안 양쪽 의견이 크게 달랐던 점을 생각하면 낮은 수준의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대북 전단은 지난해 10월 갖기로 했던 고위급 접촉이 무산되는 빌미가 됐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5·24조치 완화·해제 문제에 대한 정부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정부는 최근 금강산 관광이 5·24조치 이전에 중단된 점을 들어 양쪽을 분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몇몇 경협 사업에 양쪽이 합의하는 등의 형식으로 5·24조치 해제 문제를 우회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 이뤄지는 고위급 접촉의 틀도 주목된다. 북쪽의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이어 권력 서열 2위로 꼽힌다. 또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는 대남 업무뿐만 아니라 대외정책 전반을 관장한다. 북쪽이 실세 2명을 내보낸 것은 대화에 그만큼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북쪽은 애초 김양건 부장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대화를 제의했다. 우리 쪽이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요구하자 북쪽은 2 대 2 구도로 바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참석을 제안했다. 이는 북쪽이 군사 문제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전반을 놓고 논의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지난해 10월 초 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 때도 왔으나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함께 온 김양건 부장이 주로 발언했다.
연이은 고위급 접촉은 그 자체로 남북 사이 긴장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을 때의 주된 해법은 대화를 통한 합의였다. 북쪽은 이번에 대화 효과를 높이려고 무력도발을 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는 북쪽이 과거 여러 차례 구사한 ‘벼랑끝 전술’과 비슷하다.
북쪽 속내가 어떻든 남북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북 사이 긴장이 높아지면 한반도를 비롯해 동아시아 전체의 정세가 불안해진다. 남북 대화는 이번으로 그칠 게 아니라 확실한 성과를 낼 때까지 책임 있게 지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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