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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사면 열흘 만에 재벌 총수 만나 격려한 대통령

등록 2015-08-25 18:36수정 2015-08-26 08:41

임기 5년의 반환점을 도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기도 이천의 에스케이(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건 상징적이다. 대통령이 직접 생산현장을 찾아 경제 재도약의 의지를 다지는 걸 탓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의 곁에 불과 열흘 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재벌 총수가 서서 대통령을 칭송하면서 수십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걸 보는 국민의 마음은 영 편하지가 않다.

‘절제된 사면’이니 ‘원칙 있는 사면’이니 하는 말로 감추려 했지만 결국 재벌 총수 사면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날 행사는 똑똑히 보여주는 듯하다. 익히 예상하긴 했지만 대통령은 죄를 지은 재벌 총수를 격려하고 기업은 그 대가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풍경은 흡사 돈과 법치를 물물교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면장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런 모습을 스스럼없이 국민에게 보여주는 사회에서 과연 정의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천 공장 현장에서 박 대통령과 최태원 회장이 한 얘기는 더욱 민망하고 실망스럽다. 최 회장은 내내 박 대통령 옆을 지키며 ‘존경하는 대통령님’ ‘대한민국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정말 밤낮으로 여념이 없는 대통령님’ 등의 찬사를 했다고 한다. 자신을 특사로 풀어줬으니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나, 그렇다고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 총수가 대통령에게 저런 식의 상찬을 하는 건 보는 사람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더 큰 문제는 박 대통령의 발언과 시각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첨단 스마트 공장과 혁신적인 연구소도 낡은 노사제도를 가지고는 잘 돌아갈 수 없다”고 노동 개혁을 촉구했다. 이젠 노동자들도 경제 재도약을 위해 협조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전에 대통령은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법을 어긴 재벌 총수는 특별사면으로 풀어주자마자 직접 만나 어깨를 두드리는 대통령이,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노동자 대표들은 단 한번이라도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런 대통령이 외치는 ‘노동 개혁’을 노동자와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박 대통령은 5년 임기의 절반을 남겨두고 있다. 면전에서 대통령 찬가를 부르는 사람만 만나고 대통령에게 뭔가 해주겠다는 사람의 얘기만 듣는다면 영영 ‘반쪽 대통령’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다수 국민은 대통령 칭찬에 인색하고 오히려 대통령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그들과 대화해야 진정한 소통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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