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경제일간지가 지난해 12월 ‘노동시장 글로벌 스탠더드로’라는 제목으로 3회 시리즈 기사를 실었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호봉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고용노동부의 정책과 방향이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언론사 스스로 판단해 취재하고 편집했다면 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기획이긴 하다. 하지만 그 언론사는 이 기사의 대가로 고용부한테서 22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가 언론에 돈을 주고 입맛에 맞게 기사를 쓰도록 한 꼴이어서, 독자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입수한 한 홍보대행사 자료를 보면 정부와 언론사 사이에 ‘홍보용역’이란 명목의 거래행위가 꽤 성행하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 한 종합일간지가 ‘한국경제 혁신 과제’라는 주제로 쓴 시리즈 기사 등에 대해 5500만원을 제공했으며, 노동쟁의 없는 한 대기업 사업장 노동조합이 산업훈장을 받았다는 다른 언론사 기사의 대가로 1650만원을 줬다. 이 홍보대행사는 지난해 통상임금 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취지로 고용부로부터 5억원의 홍보예산을 받아내 이 가운데 1억8253만원을 언론 프로그램에 썼다고 한다. 지난해 고용부가 14건의 정책을 두고 10곳의 홍보대행사에 61억여원어치의 비슷한 용역을 맡겼다고 하니, 정부 홍보가 단단히 빗나가고 있다고 의심할 상황이다.
정부가 정책 방향을 홍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을 쓰는 정부는 홍보 방법이 정당하고 투명해야 한다. 가령 정부가 보도자료나 정책 연구자료를 상세하게 작성해 널리 배포하는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부가 강조하고 싶은 정책 방향을 광고로 만들어 싣는 것도 정당하다. 독자들이 광고인지 기사인지 혼동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정부가 특정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유도할 필요를 느낄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민간기관의 토론회나 세미나, 포럼, 연구사업 등을 일정한 범위에서 후원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가 균형있게 표현되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정부가 예산을 지렛대로 삼아 공론의 방향을 정하고 언론을 움직이는 것은 명백히 ‘언론매수’이며 여론을 조작하는 행위다.
언론도 문제다. 이런 방법으로 잠깐 수익을 올릴지 모르겠으나 독자를 속이는 행위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언론의 신뢰성을 무너뜨림으로써 언론 자신의 생명력과 민주주의의 기초를 뒤흔들게 될 것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그릇된 거래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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