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지난 대통령 선거 직후 열린 한 모임에서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게 시간문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고 이사장의 보수적 성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그런 차원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발언이다. 선거에서 투표자의 절반 가까운 지지를 받은 야당 대선 후보를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한 것은 유권자들을 조롱하고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장은 그 누구보다도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덕망과 인품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고 이사장은 그런 덕목을 갖추기는커녕 언론 종사자들에게 가장 금기인 ‘극단적 사고’의 신봉자임이 드러났다. 그의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과 야당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보면 최소한의 사리분별도 없는 사람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방문진 이사장에 전혀 부적합한 인물이다.
1981년에 일어난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를 지낸 고 이사장은 이 사건에 대해 “민주화 운동이 아닌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변호를 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후보나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사람”이라는 주장도 폈다고 한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은 5공 시절의 대표적인 공안사건으로, 당시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은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열린 재심사건 상고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런데 고 이사장은 반성은커녕 전직 대통령까지 싸잡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뻔뻔함을 보였다.
고 이사장의 발언 시점은 2년8개월 전이지만 그 발언의 의미와 파장은 단순한 과거형에 머물지 않는다. 당장 그가 공산주의자로 매도한 문재인 후보는 현재 제1야당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방문진 이사장으로 있는 한 문화방송은 계속 중립성과 공정성 시비에서 헤어날 수 없게 돼 있다. 고 이사장은 당장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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