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국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하기 위해 7일 실무접촉을 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8·25 남북 합의의 앞날에 큰 영향을 줄 중요한 행사다. 이런 때일수록 미래지향적인 전망 아래 남북 관계를 해칠 수 있는 변수들을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그릇된 방향 설정과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독단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4일 ‘한-중 통일 논의’ 발언은 잘못이다. 박 대통령은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뤄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한-중 사이에)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국과 중국이 통일 논의의 핵심 당사자가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중국이 이런 구도에 응할 이유도 없다. 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남북 사이 장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했다. 중국이 말하는 ‘자주’의 주체는 외세, 특히 미국을 배제한 남북한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남쪽 주도 흡수통일에 대한 중국의 이해와 협력을 겨냥한 거라면 더 위험하다. 평화통일을 얘기하면서도 실제로는 급변사태 등에 따른 북쪽 체제의 붕괴를 기대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의 지속성이 담보될 수 없다. 이번 발언은 적어도 북쪽이 남쪽의 의도를 의심할 빌미를 제공했다. 북한붕괴론이 평화통일과 모순됨은 물론이다. 과거 동·서독 통일은 전례가 되지 못한다. 동독 주민의 통일 선택과 북한붕괴론은 맥락이 전혀 다르다.
박 대통령이 ‘부주의한 과잉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한-중 정상회담과 열병식 참석을 통해 확보한 외교 자산을 손상시킨 것은 분명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 등에 쏟아야 할 동력을 오히려 새 갈등 요인을 만드는 데 쓴 것이다. 박 대통령은 7일 “시진핑 주석과 한-중 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들을 논의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실제 진행된 내용은 이 정도 수준이다. 그럼에도 ‘통일 논의’까지 언급한 데는 회담 성과를 부풀려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무슨 뜻으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해명할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이 이 발언대로 굳어진다면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관련국과의 관계에서 혼란만 커질 뿐이다. 그러잖아도 남북 관계의 앞날에는 갖가지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섣부른 통일외교는 통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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