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사설] 떡잎부터 잘라내야 할 ‘디엔에이 연좌제’ 가능성

등록 2015-09-10 18:51

검찰이 수감자의 디엔에이(DNA) 정보를 모아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 ‘가족 검색’ 기능을 탑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국무총리실 산하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 관리위원회는 일가 남성들이 공유하는 동일 부계혈족 유전자 정보를 수사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고 한다. 쉽게 말해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범인을 찾을 때 전과자뿐 아니라 범죄 전력이 없는 가족·친척까지 모두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디엔에이 연좌제’인 셈이다.

아무리 범죄 수사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이런 식이면 무고한 다수의 시민이 수사기관의 주목을 받게 되는 인권침해 상황이 초래된다.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범죄 현장의 유전자 정보와 정확히 일치하는 특정인을 검색하는 ‘일대일 동일인 판독’ 방식만 허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사의 효율성이 인권을 밀어내지 못하도록 촘촘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온 게 현대 형사절차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과학수사라는 포장을 썼다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검찰은 ‘가족 검색 기능을 실제 활용한 적은 없다’거나 ‘동일 부계혈족 유전자 정보 활용은 검토 수준이다’라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용하지 않을 기능을 왜 굳이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보인권단체들이 ‘이미 마련된 기능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수사기관이 떨쳐낼 수 있겠느냐’고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 검색 기능과 동일 부계혈족 유전자 정보 활용 방안은 공식적으로 폐기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인권침해 소지가 짙은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 운용 방식도 재고돼야 한다. 현재 데이터베이스 관리는 검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두 곳이 맡고 있는데, 민감한 정보를 관리하는 주체와 이를 이용하는 수사기관이 겹치는 건 문제가 있다. 오남용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수사 업무와 무관하거나 독립성을 갖춘 기관이 유전자 감식 업무를 담당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죄자의 유전자 정보 채취 및 보관 범위도 조정이 필요하다. 강력범죄도 아닌 노동쟁의나 집회·시위 사건 관련자까지 마구잡이로 유전자 정보를 채취하고 이를 평생 보관하는 건 과도하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현행 제도를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상당수 재판관들이 반대·보충 의견을 통해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국회의 관심을 촉구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