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술 이전 거부로 20조원 규모의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KFX·보라매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됐다. 이 기술은 정부가 차기전투기(FX)로 선정해 미국 록히드마틴에서 도입하기로 한 F-35A의 핵심기술로, 미국 정부가 수출 승인권을 갖고 있다. 정부는 국내 기술을 활용하거나 유럽 쪽과 협력하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이 수출 승인을 거부한 기술은 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적외선 탐색·추적 장비 등 보라매 사업에 꼭 필요한 4가지 기술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7조3천억원이 넘는 차기전투기 사업의 기종을 F-35A로 결정했다. 당시 미국 쪽은 이들 기술 제공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성사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이전의 1·2차 차기전투기 사업 때도 보잉 F-15K를 팔면서 관련 기술을 이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적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F-35A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정부는 애초 차기전투기 사업 규모를 8조원으로 한정했다. 2013년 9월, 신청한 세 기종 가운데 유일하게 가격 요건을 충족한 보잉의 F-15SE를 후보 기종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이 기종을 탈락시킨 뒤 기술 요건을 강화해 2014년 9월 F-35A로 최종 결정했다. 예산에 맞추느라 구입 대수는 크게 줄었다. F-35A로 내정해 놓고 기준을 맞췄다는 말이 나왔다. F-35A는 최첨단이긴 하지만 안정적이지 않다. 지난해 6월 치명적인 엔진 결함 사고를 일으켰으며, 미국 의회 회계감사원(GAO)도 4월 엔진 신뢰성을 문제로 제기한 바 있다. 미 국방부도 애초 구매 계획을 줄이려는 분위기다.
우리나라가 도입한 무기 가운데 미국산은 80%에 가깝다. 특히 최근에는 록히드마틴 제품이 주종이다. 얼마 전에는 1조8천억원 규모의 KF-16 개량사업 책임 업체가 영국 비에이이(BAE)시스템스에서 록히드마틴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차기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할 이지스 전투체계 사업도 이 회사가 가져갔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사드) 체계의 한국 수출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 회사다.
미국은 자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처지를 이용해 ‘갑질’을 하는 행태를 보인다. 정부는 피해를 보면서도 미국 쪽에 끌려가기만 한다. 아무리 한-미 동맹이 중요하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튼튼한 안보가 이뤄질 수 없다.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책사업이 삐걱거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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