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3일 고시될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과 각론을 내놨다. 교육과정 개정안은 우리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밑그림이 돼야 하는데, 우려했던 대로 그에 턱없이 못 미치는 졸속 개정안임이 확인됐다.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해 가장 큰 쟁점이 됐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문제만 봐도 그렇다. 한국사 국정화는 교육제도의 근본 철학과 관련된 중대 사안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아직도 국정화 여부는커녕 이를 언제 확정할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한자 병기는 일단 철회하되 초등학교에서 가르칠 적정 한자 수 등을 내년 말에 발표하기로 했다. 이처럼 사회적 논란이 뜨거운 문제들을 뒤늦게 공론화하고, 결국 개정된 교육과정을 고시하는 시점까지 결론을 미루는 것은 무책임 행정의 극치다. 이러고도 ‘준비된 교육과정 개정’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개정 교육과정은 2017년부터 연차적으로 적용된다. 새 교과서 개발과 교사 연수 등 사전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빠듯하다. 초등학교 1~2학년 교과서는 내년 3월 시범 적용하려면 석달밖에 남지 않았다. 더구나 2021학년도부터 새 교육과정에 따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데 수능 개편안은 2017년에야 발표한다고 한다. 문·이과 통합을 뼈대로 새로운 과목이 편성되는 등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면서도 이를 입시 개선과 어떻게 연결지을지 사전에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교육정책의 유기적인 통합에 실패한 것이고, 학생·학부모 등 교육 당사자들의 혼란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수학·영어 등의 학습부담을 줄인다고 하지만, 입시와 어떻게 연계되는지가 실제적인 관건이다. 또 통합사회·통합과학 등 신설되는 과목의 난이도도 불투명하다. 초등학교는 오히려 수업시간과 과목이 늘어났다. 특목고·자사고의 국·영·수 몰입교육을 규제하는 장치를 마련한 게 그나마 눈에 띄지만, 이는 교육과정 개정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정부가 급하지도 않은 교육과정 개정을 왜 이리 졸속으로 서둘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앞선 ‘2009 개정 교육과정’이 2011년부터 적용돼 아직 초·중·고교 전체에 확대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새 교육과정이 도입되는 꼴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혼란과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현 정부의 임기 안에 어떻게든 새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적용하겠다는 조급증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교육정책은 백년대계를 짜는 일이다. 특히 우리 교육의 고질적 병폐인 공교육과 사교육의 본말전도 현상을 극복하는 게 급선무다. 이번 개정안은 말로만 공교육 정상화를 내세웠지 실질적 대응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새 교육과정에 따른 입시 변화에 대한 불안감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길 수도 있다. 전국 14개 시·도 교육감들은 “깊은 철학이나 장기적인 안목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어느 모로 보나 이미 실패가 예고된 교육과정 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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