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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18년 만에 드러날 ‘이태원 살인사건’ 진상

등록 2015-09-23 18:28

1997년 4월 발생한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온 미국인 아서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망한 지 16년 만인 23일 한국으로 송환됐다. 이미 기소된 상태여서 이르면 다음달엔 법정에 설 전망이다. 날벼락처럼 아들을 잃은 피해자 어머니의 오랜 고통이 이로써 씻길까마는,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뒤늦게라도 범인을 분명히 밝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유족의 말대로 범인은 18년 전에 이미 드러나 있었다. 증거와 정황들이 뻔히 패터슨을 가리키는데도 한국의 사법시스템은 엉뚱한 쪽으로만 향했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 범죄수사대는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제보를 받았고, 체포한 패터슨으로부터 혐의 사실을 어느 정도 확인했다고 한다. 패터슨이 미 8군 영내 하수구에 버린 흉기도 찾아 한국 수사기관에 넘겼다. 한국 검찰은 이를 뒤집어 패터슨을 목격자로, 같이 있던 친구를 범인으로 기소했다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법원은 당시 검찰이 크게 의존했던 패터슨의 진술에서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패터슨이 범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는 말을 여러 차례 하는 등 수사기록만 봐도 의심 가는 점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또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수감됐던 패터슨이 형집행정지 특별사면을 받도록 방치했고, 풀려나온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 기간 연장을 빼먹어 미국 도주 길까지 터줬다. 그 뒤에도 패터슨 체포를 요구하는 유족의 요구에 못 찾겠다는 답변만 거듭했다. 도피 중이던 패터슨이 한국을 조롱할 만도 했다. 검찰은 방송 보도와 영화로 여론이 들끓은 2009년에야 미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는 등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 공방 끝에 결국 패터슨을 인도받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집념과 용의주도함은 진작에 있었어야 했다.

사건 해결이 지지부진했던 데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탓도 크다. 당시 혐의자와 참고인들은 대부분 미군이나 군무원 가족이었다. 협정 때문에 한국 수사당국은 이들의 신병 확보는커녕 초동수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증인신문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불평등한 협정의 개정은 지금도 여전한 숙제다.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증거를 여럿 확보했다고 한다. 피해자 등 세 명만 있던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인 만큼 유죄 입증이 크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공명정대한 재판을 통해 한 가정을 짓밟고 한국 사법체계까지 능멸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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