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청년희망펀드’가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시중은행 등을 중심으로 직원들에게 반강제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일이 잇따르며 큰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다. 애초 정부가 내세운 ‘자발적 참여’라는 말이 무색할 따름이다. 백 걸음을 양보해 이른 시간 안에 참여 열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해 보려고 해도 문제가 많다.
청년희망펀드는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받을 수 없어 기부금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스스로 마음이 내킬 때 펀드에 가입하도록 이끄는 게 상식에 맞고 정부도 그렇게 밝혔다. 강제성이 개입하면 세금이나 다를 바 없다. 청년 취업을 돕는다는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이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펀드를 출시한 은행 가운데 하나인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이 직원들에게 사실상 가입을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케이이비하나은행은 모든 직원들이 1인 1계좌를 개설하도록 요청하는 공문을 일선 영업점들에 내려보냈다. 영업점별로 실적 경쟁을 시키다 보니 이 과정에서 직원 가족이나 친구를 끌어들이도록 독려하는 경우도 있다. 반강제적 가입은 신한은행과 케이비(KB)국민은행 등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직원들이 펀드의 취지에 어느 정도 공감할지 모르겠다.
공기업 등을 비롯한 정부 산하기관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조직 책임자가 앞장서서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형태의 가입 주문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중요한 관심 사안이어서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펀드 가입 실적이 은행을 통해 국무조정실에 매일 보고돼 더 그렇다고 본다. 이리되면 기업들도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22일 기업들의 돈은 받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박 대통령이 펀드를 제안한 의도를 모르지 않는다. 오죽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했으면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싶기도 하다. 청년실업률은 6월 현재 10.2%로 1999년 6월(11.3%)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특히 체감실업률은 23%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실업 문제를 푸는 데 펀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게다가 펀드의 목적 자체가 아직 모호하다. 이런 상황에서 반강제 가입으로 물의가 빚어지고 있으니 펀드의 앞날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 문제는 원칙적으로 정부 정책과 예산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과 정부에는 그런 의무와 권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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