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여야는 23일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열었지만 고성만 오갔을 뿐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선거구 획정만큼 여야, 또는 같은 당 안에서도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은 드물다. 그럴수록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 원칙이란, 이번 선거구 획정의 근거가 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되새겨보고 지키는 것이다.
이번 재획정 작업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인구 편차를 3 대 1까지 허용하는 현행 선거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면서 ‘2015년 12월31일까지 모든 선거구에서 인구 편차를 2 대 1로 조정하라’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헌재는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보다 투표가치의 평등이 훨씬 중요하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헌재 결정에 따른다면 농어촌의 인구가 적은 지역구는 통폐합되고, 수도권의 인구 밀집지역은 분구가 될 수밖에 없다. 인구 하한선을 밑도는 농어촌 선거구를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건 헌재 결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위헌적 발상이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농촌 대표성을 소중히 여겨 비례대표를 줄이라는 게 헌재 결정의 취지”라고 주장하는 건 견강부회일 뿐이다.
물론 농촌의 지역 대표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나름의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인구 하한선을 낮춰 농촌 선거구를 살리면 그만큼 인구 상한선도 낮아지기 때문에 수도권 선거구 역시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수용하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크게 늘리거나 비례대표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의원 증원은 하지 않기로 여야가 이미 합의했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서 지적한 건 ‘지방자치제 정착으로 지역 대표성의 중요성이 과거만큼 크지 않다’는 점인데, 오히려 사회 다원화에 따라 다양한 계층·집단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현재로선 둘 다 실현 가능한 방안이 아니다.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역구 수를 244~249개 범위로 정한 데 이어, 곧 구체적인 지역구 수를 적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면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 농촌 의원들의 반발이 격해질 것이다. 그러나 선거구획정위는 국회 스스로 독립성 확보를 위해 외부인사들로 구성한 기구다. 여야 모두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 결정을 존중하는 게 옳다. 그래야 선거 직전까지 여야가 줄다리기하다가 막판에 주고받기로 타협하는 게리맨더링(자의적 선거구 획정)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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