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한화그룹의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한화에스앤씨(S&C)를 상대로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이익 제공 혐의 조사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재벌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공정거래법이 2월 효력을 발생한 이후, 첫번째 사례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총수 일가가 그룹 지배력을 활용해 계열사의 이익이나 자산을 총수 일가의 개인 주머니로 빼돌리는 행위로, 재벌 체제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화에스앤씨를 매개로 한 한화그룹의 ‘이상한’ 거래 흐름에서도 이런 의혹이 짙다. 한화그룹의 전산시스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이 회사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총수 일가의 ‘개인회사’다. 그런데도 지난해 이 회사는 매출의 52%를 그룹 계열사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계열사로선 직접 상품·용역 거래에 나서는 게 훨씬 유리하지만, 굳이 한화에스앤씨가 끼어들어 구매 대행 등의 명분으로 일종의 ‘통행세’(중간수수료)를 뜯어낸 것이다. 때마침 한화투자증권 사장의 전격 경질 결정과 관련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비판적인 사장이 전산장비 구입처를 한화에스앤씨에서 아이비엠(IBM)으로 바꾸려다 총수 일가한테 ‘괘씸죄’에 걸렸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여전히 여러 재벌이 교묘한 방법으로 부당이익 제공을 금지한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22일 열린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선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내부거래액 중 총수 일가의 부당이익 제공(사익 편취) 금지 규제를 빠져나간 거래 규모가 최소 6조6천억원으로 집계됐다는 발표도 나왔다.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의 단체급식업 분할 및 건물관리업 이전, 현대글로비스의 총수 일가 지분 일부 매각 등이 대표적이다. 내부거래 관행은 그대로인데 꼼수를 부려 규제만 피해간 것이다.
과거 재벌 2세 승계과정이 주로 차명재산 활용 등의 방식으로 진행됐다면, 최근 들어 3·4세 승계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승계자금 확보 등 외견상 ‘합법적’ 거래의 형태를 띠는 게 특징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엄중한 잣대가 중요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경제민주화 공약 중 지켜진 거라곤 그나마 공정거래법 개정뿐이다. 현행법상 총수 일가가 부당이익 제공 행위를 지시 또는 관여한 행위가 드러나면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한다. 국내 재벌의 편법적인 부의 이전을 막으려는 공정위의 강력한 실천 의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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