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잠정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두고는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밀실 공천과 동원 경선 등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에 정당의 기능 약화, 신인 발굴의 어려움 등 단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또 두 당 대표가 선거구 획정 등 당면 현안은 제쳐놓고 공천제도 문제만 합의하고 끝난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두고 정치권에 몰아닥친 후폭풍은 이런 원론적인 문제의식 차원을 뛰어넘는다. 표면적인 논쟁 대상은 안심번호 도입의 적절성 여부지만 그 실체는 공천권을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이다. 특히 새누리당 안 친박-비박 간의 정면충돌은 ‘공천 전쟁’이라고 이름붙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사활을 건 싸움이다. 지금 친박 세력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 것은 안심번호제에 깃든 ‘상향식’ 공천의 정신을 거부하고 다음 총선에서도 ‘하향식’ 공천을 강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가 30일 오후 새누리당 의원총회를 앞두고 갑자기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은 청와대의 속내를 확실히 보여준다. 안심번호제 도입 절대 불가의 뜻을 확실히 밝힘으로써 친박계 의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바꿔 말해 “전략공천은 단 한 석도 없을 것”이라는 김무성 대표의 말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내년 총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상당 부분 공천권을 직접 행사하겠다는 의사 표시라고 할 수도 있다.
청와대의 이날 발언은 여러모로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청와대가 정당의 고유 활동인 공천 방식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게다가 여야 두 정당의 대표가 합의한 내용을 청와대가 대놓고 반박하는 것은 정치 도의나 예의 면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원총회를 앞두고 당대표를 향해 면전에서 직격탄을 날린 것도 그렇다. 이는 박 대통령이 여전히 여당을 손바닥 위의 공깃돌 정도로 여기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청와대의 이날 발언은 결국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비박계 의원들에 대한 공개적 압력 행사이자, ‘의원총회의 결론’을 미리 유도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공천 문제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내년 총선에서 영향력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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