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충돌은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과거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하면서 당무를 좌지우지하고 여당을 통해 국회까지 통제하던 권위주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너무 컸기에, 대통령의 집권당 지배를 종식하고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를 강화하려 애쓴 것이 1990년대 이후 정치개혁의 일관된 방향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총재에서 일반 당원으로 물러앉고, 공천권을 청와대에서 행사하던 관행도 점차 사라졌다.
정당 민주화의 흐름이 뚜렷하게 꺾인 것은, 아니 오히려 역류하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다. 박 대통령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청와대 특보로 기용했고, 여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든 개입해서 당을 장악했다. 국회의원 투표로 뽑힌 여당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어 내쫓은 6월의 ‘유승민 파동’은 그 단적인 사례다. 그때 김무성 대표는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란 명분으로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을 보고만 있었다. 국회 다수당의 대표가 청와대 참모의 정면공격을 받는 요즘의 한심스런 모습은 김 대표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여당은 정부와 한 몸이기 이전에, 삼권분립 정신에 따른 입법부의 한 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갈등도 이런 기조 위에서 바라봐야 한다. 정책 집행에 관한 일도 아닌 순전히 정당 내부의 일인 공천 문제에 청와대가 개입하는 건 정당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정당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통령보다 당원과 국민의 뜻을 먼저 반영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공천제에 관한 야당과의 협의 내용을) 청와대에 사전 통보했다”는 김 대표의 발언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는 청와대와 협의 여부를 따질 게 아니라 “당의 공천권 문제에 왜 대통령이 개입하느냐”고 따졌어야 했다. 청와대 개입을 당연시하고 사전 조율을 얼마나 잘했는지만 따지기 시작하면 여당의 독자성은 설 자리가 없다. 당원과 국민보다 대통령을 먼저 쳐다보는 ‘샐러리맨 여당’만 남을 뿐이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청와대에 무릎 꿇는 여당의 모습은 ‘유승민 사태’ 때와 오늘이 다르지 않다. 이럴 거면 당 총재직을 대통령에게 다시 헌정하는 게 훨씬 솔직할 것이다. 언제까지 대통령이 여당을 틀어쥐고 흔드는 후진적 정치행태를 지켜봐야 하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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