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폴크스바겐 경유차 일부 차종의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단일 리콜 사례로는 사상 최대인 1100만대에 이른다는 추정이 나오는 등 확산 일로에 있다. 그 가운데 약 12만대가 판매된 것으로 보이는 국내에서도 환경부가 1일 해당 차종에 대한 검증조사에 착수했다. 이미 미국에서 드러난 것처럼 인증시험 때만 배출가스를 줄이는 장치가 작동하고 실제 주행 때는 작동하지 않도록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폴크스바겐 쪽에 과징금을 물리거나 해당 차종의 판매를 정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일개 자동차회사의 부정이나 소비자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경유차의 본산인 유럽에서 경유차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클린 디젤’이란 신화가 종말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경유차가 실제로 도로를 주행할 때 인증시험 때보다 훨씬 많은 오염물질은 내보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일 유럽 최대의 자동차클럽인 ‘아데아체’(ADAC)의 연구를 인용해 르노, 닛산, 현대차 등의 경유차가 운행 중 질소산화물을 시험 때보다 10배 이상 내뿜는다고 보도했다. 환경부가 2월 경유택시 도입을 앞두고 국산 경유차를 실제 도로 운행 조건에서 측정했을 때도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인증기준의 최고 18배에 이르렀다.
경유차는 연소 과정에서 휘발유차보다 많은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를 배출한다. 둘 다 수명 단축이나 암 등 심각한 건강피해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아무리 대책을 세워도 서울 등 대도시에서 이들의 오염도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주요 이유로 급증하는 경유차가 꼽힌다. 세금 혜택과 완화된 배출기준, 소비자 취향이 어울려 올해 새로 도로에 나오는 차의 52%는 경유차다.
이제 경유차 정책을 자동차산업 육성이 아니라 국민 보건 차원에서 보아야 할 때가 됐다. 폴크스바겐이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내야 할 벌금은 약 2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의 과징금 최고액은 10억원에 묶여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런던과 파리가 대기오염 때문에 경유차의 진입 금지를 검토하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보조금을 주어 경유택시 도입을 강행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는 경유차의 매연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수도권에서만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으로 조기사망하는 사람이 1만5000여명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다. 경유차 정책을 새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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