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이하 획정위)가 주말에도 계속 회의를 열면서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로써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법정시한(13일)은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렇게 되면 사상 처음으로 획정위를 독립기구로 둔 의미가 사라진다.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현재 획정위는 지역구 수를 246석으로 한다는 데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 대 1 인구편차’를 지키려 일부 농촌 지역구의 통폐합이 불가피해지자, 이를 피하는 방안을 찾자는 일부 획정위원들의 주장 때문에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엔 어떤 경우에도 농촌 지역구를 줄이고 도시 지역구를 늘려선 안 된다는 새누리당의 강한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촌 지역구를 살리기 위해 선거법상 금지된 ‘자치 구·시·군 분할 금지’ 원칙을 깨고 게리맨더링(부정 선거구 획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획정위 내부에선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고 한다.
우선, 정치권은 획정위원들에게 압력을 가해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려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획정위가 이미 여러 차례 선거구 획정기준을 정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지만 이 요청에 부응하지 못한 건 정치권의 책임이다. 법정시한을 코앞에 두고서야 이런저런 요구를 획정위원들에게 하는 건 명분도 없고, 획정위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일이다.
선거구획정위도 외부 입김에 휘둘릴 게 아니라 자주적으로 빨리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릴수록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선거구 통폐합 또는 분구를 막기 위해 특정 구·시·군의 일부를 떼어내 다른 구·시·군에 붙이는 건 선거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에 획정위가 스스로 선거구를 정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 선거구는 또다시 정치권의 담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획정위원들은 자신을 추천해준 여야 정당보다 국민이 우선임을 명심하고 조속한 결론을 내야 한다. 그래야 선거구획정위도 살고, 국민의 소중한 투표권이 제대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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