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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무책임 정치권과 무소신 획정위가 낳은 실패

등록 2015-10-13 18:26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이하 획정위)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작업의 법정 시한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13일 사실상 손을 들었다. 김대년 획정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법정 기한인 10월13일까지 국회에 획정안을 제출하지 못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국회가 정치적 결단을 발휘해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정치권의 게리맨더링(부정 선거구 획정)을 막기 위해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기구를 사상 처음으로 설치했는데, 그 독립기구가 결정을 못 내리고 다시 정치권에 공을 넘겼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이러니 국민이 정치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엔 우선 여야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숫자,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달라고 획정위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여러 차례 요청했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이 기준을 정하지 못한 건 정치권이다. 획정위가 지역구 수를 244~249개로 정한 뒤에야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 의원들은 “농촌 지역구를 줄여선 안 된다”고 획정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정당 추천을 받아 임명된 획정위원들이 이런 압력을 견뎌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 추천을 받았더라도 획정위가 독립기구인 이상 ‘원칙과 상식’에 따랐다면 이렇게 빈손으로 활동을 끝내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독립기구까지 만들면서 선거구 재획정에 나선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인구 편차가 심한 기존의 선거구를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획정위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 편차 2 대 1’을 제1의 원칙으로 삼아 획정 작업에 나서는 게 옳았다. 그랬다면 아무리 외부 압력이 있더라도 선거구 획정을 하지 못할 리가 없다. 농촌 지역구를 살리기 위해 인구 편차를 조정하는 방법은 없는지, 인구 편차를 맞추려 시·군·구를 인위적으로 나눌 수는 없는지 등 편법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결국 백기를 들어버린 것이다. 이 점에서 획정위원들은 스스로의 처신을 반성해야 한다.

내년 총선까진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획정위가 두 손 든 마당에 국회 정개특위에서도 결론이 쉽사리 날 리 없다. 이젠 여야의 정치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필요하면 여야 대표가 직접 나서 획정 기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훼손하거나 선거법을 어기면서까지 게리맨더링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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