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가 14일 국회 본회의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부득이한 경우 우리나라(정부)가 동의한다면 입국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매우 예민하고 복잡한 사안인 ‘자위대의 한반도 문제 개입’에 대한 총리의, 더 나아가 정부의 안이하고 어설픈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이런 사람이 과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총리의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이 든다.
일본은 최근 2차대전 패전 이후 유지해왔던 전수방위의 원칙을 변경해, 동맹국이 공격받았을 때도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안보 관련 법제를 완비했다. 이론적으로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화에 말려들 경우 자위대가 한반도 사태에도 개입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한국 정부의 요청이나 사전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 정부는 일본 쪽에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헌법상 우리 영토’라는 이유로 자위대의 개입시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황 총리의 발언은 누가 봐도 이런 정부의 입장에서 명백하게 후퇴한 것이다. 총리실이 굳이 해명자료까지 내어 그간의 정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고 군살을 덧붙인 것 자체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총리의 이번 답변 이전에도 정호섭 해군 참모총장이 9월24일 국방위 국감에서 “대북 억제 차원에서 (한-미) 키리졸브 훈련에 일본도 참여해 연합훈련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을 고려하면 일과성 실수라고 보아 넘기기 힘들다.
물론 황 총리의 말이 기술적으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최악의 경우 그런 사태가 올 수도 있고 그에 대비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먼저다. 외세의 개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외면하면서 북한에 대한 억지력 강화에만 초점을 맞추니 이런 ‘자해적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 운운하는 말을 앞세우는 것은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위한 멍석을 알아서 깔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매체들이 황 총리의 발언을 의외라며 주요하게 보도한 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국익을 훼손하는 황 총리의 어설픈 상황인식과 경솔한 언행은 아무리 뭇매를 맞아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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