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치 <조선일보>에는 “‘박정희 죽었어야’ 한홍구… 부친 한만년, 생전 칼럼서 ‘막내아들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를 아버지인 고 한만년 일조각 사장이 못마땅해했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한 교수가 인격 파탄의 철부지라고 강조하려는 듯하다.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런 내용이 기사로 다뤄질 만한 것인지, 그것도 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기사만 모은 지면에 실릴 내용인지도 의문이다. 품격은 내팽개친 채 특정인을 욕하는 데만 열중하는 듯한 기사를 버젓이 실은 의도는 더욱 궁금하다.
앞서 <티브이 조선>은 13일 “한 교수가 ‘박정희 더 일찍 죽였어야’라고 말하는 동영상이 서울의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방영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5일 이런 내용을 그대로 실었고, 비슷한 보도가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이를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핑계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보도는 ‘팩트’(사실)를 왜곡한 것이다. <조선일보> 등의 기사는 마치 한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그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였어야 했다고 말한 양 서술하고 있다. 의도적인 왜곡이 아니라면 이럴 수가 없다. 동영상으로 남아 있는 2014년 11월28일 문화다양성포럼 강연을 보면, 한 교수는 1948년 여순반란 사건 이후 숙군 책임자인 김창룡이 한국 군부 내 남로당의 최고위급 프락치였던 박정희를 같은 만주군 출신이라는 등의 이유로 살려준 덕에 우리 역사가 조금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창룡이) 박정희 그때 죽여버렸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죠”라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한 것을, 마치 ‘박정희를 죽여버렸어야 했다, 아쉽다’라는 아쉬움을 말한 것으로 왜곡한 것이다. 하지도 않은 말을 앞세운 ‘마녀사냥’이다.
왜 그랬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한 교수의 강연도 한참 전의 일이거니와 강연 동영상을 교실에서 상영한 것도 두 달 전인 9월18일이었다. 지금 와서 떠들썩하게 마녀사냥에 나선 데는 이제 막 논란이 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호도하려는 의도가 있었음 직하다. 그렇잖아도 한 교수는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을 주도하는 등 조선일보 처지에선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다. 때마다 진보성향 인사를 한 사람씩 표적으로 삼아 막무가내로 칼을 휘두르는 ‘빨갱이 사냥’은 조선일보에서 종종 봤던 일이다. 그런 짓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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