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22일 와병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명의로 청년희망펀드에 200억원을 기부했다. 이와 별도로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사장단과 임원들도 50억원을 모아 기부에 동참했다. 삼성 쪽은 “이 회장이 평소 인재양성을 중시해온 점이 고려돼 기부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국내 최대 재벌 총수 일가와 경영진들이 개인 주머니를 털어 청년 실업 해소에 적은 힘이나마 보태려는 뜻을 나무랄 건 못 된다. 하지만 삼성의 250억원 기부 소식은 여러모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청년희망펀드 출범 당시부터 우려됐던 여러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정부는 자발성과 투명성이 청년희망펀드의 핵심이라 주장하지만, 현실에선 이미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케이이비(KEB)하나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에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의 펀드 가입을 강요하는 일이 빚어진 게 대표적이다.
특히 ‘기업 돈은 받지 않겠다’던 정부의 공언은 이제 말 그대로 ‘빈말’이 돼버렸다. 9월17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삼성에 2000억원 내라고 하고 기업에 돈을 내라고 하면 1조원을 모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할 경우 기업이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력에 제한이 된다”며 기업 기부는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삼성의 250억원 기부가 ‘개인’ 명의의 기부라 주장하고 싶겠으나, 이는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다. 삼성을 신호탄으로 4대 그룹 등 주요 대기업에서도 벌써부터 기부 동참 움직임이 일고 있다. 마치 사전 각본에 따른 듯한 이런 모습을 두고, 과연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준조세’ 납부라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청년희망펀드는 실효성뿐 아니라 진행 방식과 원칙 면에서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기업은 일회성 기부가 아니라 투자를 늘려 고용 확대에 나서야 하고, 정부는 충분한 일자리 예산으로 실업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청년희망펀드를 운영할 청년희망재단이 제시한 사업 내용이라고 해봤자 청년희망아카데미 설립, 취업 역량 강화 등이 전부다. 고작 이런 일을 하겠다고 대기업을 직간접으로 움직여 임직원들을 독려해 수백억원을 모은다 한들 ‘100만 청년 실업’의 엄중한 현실이 꿈쩍이나 하겠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