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청와대 대변인에 <문화방송>(MBC)의 간판 프로그램 ‘100분 토론’ 진행자인 정연국 시사제작국장이 25일 임명됐다. 정 국장은 지난 20일까지도 ‘100분 토론’ 진행자로 현장에서 활동하다가 23일에야 내정 사실을 밝히며 사표를 냈다고 한다. 현직 언론인이 최소한의 ‘완충 기간’도 없이 언론사에서 권력기관으로 곧바로 줄달음쳐 간 것이다. <한국방송>(KBS) 뉴스 앵커 출신인 민경욱 전 대변인도 지난해 2월26일 아침까지 보도국 문화부장으로 편집회의에까지 참석했다가 오후에 대변인으로 취임했다. 현직 언론인이 일말의 거리낌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한순간에 ‘권력의 입’으로 변신한 일이 잇따라 벌어진 것이다. 언론 윤리의 실종도 참담하거니와, 그런 일이 거듭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전임과 신임 두 대변인의 잽싼 변신은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등 방송사가 처한 현 상황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민 전 대변인이나 정 신임 대변인 모두 뉴스 앵커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소속 방송사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권력의 품에 냉큼 안겼으니, 불과 얼마 전까지 그들의 입으로 전한 보도와 주장의 공정성·객관성은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된다. 노골적으로 정권과 손잡는 언론인, 그런 결탁을 허용한 방송사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불신만 안겨줄 뿐이다. 그런 일이 거듭 벌어지는데도 회사 차원의 아무런 반성이나 이의 제기조차 없는 것 자체가 방송과 권력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잘 보여준다.
청와대의 잘못된 인식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본령이다. 청와대는 그런 언론의 역할을 인정하기는커녕, 텃밭의 무 뽑듯 말 잘 듣는 언론계 인사를 골라 빈자리를 채우는 용도로 언론을 활용하고 있다. 그래 놓고선 앵무새처럼 권력자의 말을 대독하도록 하고 언론에는 받아쓰기만 하라고 다그친다. 언론과 권력의 건강한 긴장관계라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명제는 이 정권의 안중에도 없다. 언론계를 관직으로 유혹하고 힘으로 강압했던 유신 독재 시절이 꼭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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