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동안 군부독재가 계속된 미얀마의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제1야당 민족민주동맹(NLD)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 발전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앞으로 군부독재 청산이 순조롭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이번 선거혁명의 시작은 1988년 8월8일의 ‘8888항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부의 민주화시위 유혈진압으로 수천명이 숨졌다. 독립영웅 아웅산의 딸인 아웅산 수치는 그 직후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민족민주동맹을 만들었다. 그는 1990년 총선에서 압승했으나 군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독재를 계속했다. 이후 미얀마인들은 쉼없는 투쟁을 벌여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자유총선이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미얀마인의 고난은 역시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와 닮았다. 때문에 이번 선거혁명이 우리에게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큰 고비는 넘겼으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군부가 권력 유지를 보장하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선거와 상관없이 상·하원 의석 25%를 군부에 할당한 헌법 조항이 대표적이다. 또 외국 국적 자녀를 둔 아웅산 수치는 내년 2월 이후 의회가 선출하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이를 바꾸려면 개헌을 해야 하지만 의원 75% 이상 지지, 국민투표, 군부의 거부권 통과 등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내무·국방·국경경비 장관의 임명권도 군 최고사령관이 갖고 있다. 군부독재가 악화시킨 소수민족 문제와 종교 갈등 또한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 2012년 불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종교·종족 분쟁으로 200여명이 숨지고 14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한 이후 갈등이 확산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미얀마인들은 민주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 오랜 투쟁 속에서 다진 민주 역량은 든든한 자산이 될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력을 장악한 군부의 반동적 행태다. 군부는 이번 선거 결과에 흔쾌하게 승복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국제사회도 미얀마인의 민주화 열망이 꺾이지 않고 민정 이양이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지원해야 한다.
민주화는 근대 이후 세계사의 큰 흐름이다. 하지만 각국의 민주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국민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수준과 형태가 달라진다. 분명한 사실은 역행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성이라는 점이다. 미얀마인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모습을 지구촌이 지켜보고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