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감사원 감사위원이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10일 사직했다. 감사위원에 임명된 지 4개월 만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감사원의 2인자인 사무총장에 임명돼 올해 7월까지 2년3개월간 장수한, 관가의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통한다. 앞서 9일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씨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8개월 만에 그만뒀다. 청와대 홍보수석 출신의 윤두현씨도 곧 8개월 남짓 재직한 한국케이블티브이방송협회 회장직을 물러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에겐 공직이 총선으로 가는 일시적인 스펙 관리소였나 보다.
어찌 이들만 탓하랴.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비롯해 지난달 장관직을 그만둔 유일호(국토교통부)·유기준(해양수산부) 의원도 짧게는 7개월에서 길게는 1년 반 만에 금배지를 달려고 미련없이 장관직을 던졌다. 앞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교육부 장관, 김희정 여성부 장관 등 숱한 고위직이 ‘대통령을 위해서’란 명분으로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공직이란 국민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는 자리다. 숱한 어려움에도 공직에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공직이 개인 또는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 이용하고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면, 그런 나라와 국민은 어떻게 되겠는가. 불행히도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딱 그런 식이다.
더 걱정스러운 건, 대통령이 이런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공직을 선거의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을 꾸짖기는커녕 다만 몇 달이라도 자리를 줘서 홍보물에 그럴듯한 경력 하나 추가해주려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총선 출마를 선언하는 와중에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을 선택해달라”고 공공연히 ‘친박 지지’를 촉구하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러니 고위 공직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대통령 친위대’를 자처하며 앞다퉈 표밭으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정치적 입신을 위해 몇 달 만에 공직을 내던지는 이들이 박 대통령이 말하는 ‘진실한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아직 5개월도 더 남은 총선 때까지 수많은 공직자가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걸 대통령은 계속 보고만 있을 건지, 그러면서 ‘국정과 민생의 안정’을 국회에 요구할 염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어느 정권이든 정치에 초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내놓고 국정을 외면하고 선거에 ‘올인’하는 정권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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