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나온 국회의원 발언 가운데 3분의 1 가까이가 지역구 민원성 요구에 집중됐다는 통계는 국회 예산심의의 비뚤어진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부 예산안을 국회가 제대로 감시하고 통제하기는커녕 지역구 예산을 불리는 데만 국회의원들이 혈안이 된다면 국민은 누구를 믿고 세금을 내야 하나.
<한겨레>가 예산 감시 시민단체인 ‘나라살림연구소’와 함께 7차례의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 질의내용을 분석해 봤더니, 예결위원 50명의 발언 가운데 31.9%가 지역구 관련 민원성 요구였다. 정부 예산안 중 불필요한 부분의 삭감을 요구하는 발언은 전체의 3.4%에 불과했다. 전체회의 뒤 일부 의원은 ‘예결위원으로 지역 ○○예산 확보를 강조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니, 이들에겐 제사보다 젯밥이 훨씬 중요했던 모양이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민원에 집중하면, 정부의 재정운용 전반에 대한 깊이있는 심의는 자연스레 무뎌질 수밖에 없다. 정부 부처에서도 의원들의 이런 경향을 익히 알고 아예 일정액의 ‘의원 민원용 예산’을 미리 책정해 놓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들의 주고받기 짬짜미 속에 엄격하고 치밀한 예산 심사는 쉽게 증발해 버린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가 예산 심사다. 아무리 정부가 예산 편성권을 쥐고 있더라도 그걸 심의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한 건, 세금을 정부가 허투루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국회의원에겐 ‘지역 대표성’보다 ‘국정의 감시자’ 역할이 훨씬 중요하다. 매년 예산 심의 때마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는 건, 그런 비판이 지역구에서 표를 얻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는 정치 풍토 탓이 크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1차 책임은 국회에 있지만 유권자의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
지금처럼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한 뒤에야 국회가 심의를 하면, 심의가 부실해지는 걸 막기 어렵다. 국회 예결위를 상설화해서, 예산 편성 초기 단계부터 국회가 감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것도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를 제어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런 제도 개선에 국회가 스스로 나서야 한다. 정부의 예산 편성은 물론이고 국회 심의 과정마저 복마전으로 변하는 관행을 계속 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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